7. 통일 신라의 중대와 하대의 특징
● 신라의 시대 구분
- 왕의 혈통에 따라 상대(박혁거세 ~ 진덕여왕 : 성골),
중대(무열왕 ~ 혜공왕 : 진골 - 무열계 직계),
하대(선덕왕 ~ 경순왕 : 내물계)로 구분
● 신라 중대의 발전
⑴ 태종 무열왕 시기 백제를 멸망 시켰고(660), 문무왕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668), 나당 전쟁에서 승리하여
삼국을 통일함(676)
⑵ 신문왕(681 ~ 692)
- 만파식적의 고사
- 전제왕권 확립 : 김흠돌의 난과 연루된 전골 귀족들을 숙청
- 중앙관제 완성
- 군사 제도 : 9서당 10정
- 지방 행정 제도 : 9주 5소경
-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 / 왕권 강화
- 국학 설치 : 유교적 정치 이념에 입각하여 관료들의 자질을
높이기 위해 설치
- 6두품은 왕권과 결탁하여 왕의 학문적, 종교적, 정치적 조언자의 역할
⑶ 성덕왕(702 ~ 737)
- 백성들에게 정전을 지급
⑷ 경덕왕(742 ~ 765)
- 집사부의 장관인 중시를 시중으로 고침
- 국학을 태학감으로 개칭하고 박서, 조교를 둠
- 김대성이 불국사와 석굴암을 축조(완성 : 혜공왕)
- 경덕왕 16년에 족읍이 다시 부활됨
● 신라 하대 사회의 동요
⑴ 선덕왕의 즉위(780)
⑵ 집사부 시중의 세력은 약화되고, 귀족을 대표하는 상대등 세력이 강화됨
⑶ 왕위 쟁탈전 : 김헌창의 봉기(882, 헌덕왕 시기 : 809 ~ 822), 장보고의 난(846)
⑷ 독서 상품과의 실시(788) : 원성왕 대 능력 중심의 관료 입용 제도인 독서 상품과를
실시하였으나, 진골귀족들의 반발로 제도로 정착되지는 못함
⑸ 호족의 성장 : 토착 촌주, 몰락한 진골, 지방의 군진 세력 및 해상 세력등이
자립하여, 스스로를 성주나 장군으로 칭함
⑹ 도당 유학생 출신의 6두품은 유교 정치 이념을 제시하였으나 수용되지 않자
반신라적 경향으로 돌아서고 지방 호족과 연결됨
⑺ 농민의 난 : 9세기 말 진성여왕 시기의 '원종과 애노의 난','적고적의 난'
※ 보충 설명
● 신라 하대
- 신라 하대는 37대 선덕왕으로부터 56대 경순왕 때까지를 말하는데,
155년 동안 20명의 왕이 교체될 정도로 정치적 혼란기 였다,
● 김헌창의 난
- 웅주 도독인 김헌창은 무열왕계의 후손인 아버지 김주원이 귀족들의
반대로 인해 원성왕에게 왕위를 빼앗기자 이에 불만을 가지고 웅주에서
국호를 장안, 연호를 경운이라 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아들 김범문이 헌덕왕 17년(825) 재차 봉기하여
분한산주를 공격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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