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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급 공무원/한국사

한국사정리 / 백제의 성장과 발견

by 바방 2020.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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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백제의 성장과 발견

 

● 건국 및 성장

⑴ 고이왕 ( 8대, 234 ~ 286 )

 - 고대 국가의 기틀 마련

 - 왕위의 형제 상속

 - 영토 확장 : 한강 유역을 완전히 장악

 - 관제 정비 : 6좌평 및 16관 품 설치

 - 율령 반포 : 도둑질한 자는 귀양 보냄과 동시에 2배를 배상하고

 관리가 뇌물 받거나 횡령했을 때는 3배를 배상하고

 종신토록 금고형에 처한다.

⑵ 근초고왕 ( 13대, 346 ~ 375 ) 

 - 고대 국가 완성

 - 왕권 강화 : 부자 상속에 의한 왕위 계승 확정

 - 고흥이 서기 편찬 ( 375 )

 - 영토 확장 : 가야에 대한 지배권 확립

  남쪽으로는 마한의 나머지 지역을 정복->영토가 남해안에 이르게 됨

  북으로는 평양성을 공격 ->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킴

 - 대외 관계 : 남조의 동진과 교류하고, 산둥, 요서, 일본 규슈로 진출함

  왜에 칠지도 하사

⑶ 침류왕 ( 15대, 384 ~ 385 )

 - 동진의 마라난타에 의해 불교가 전래됨( 384 )

⑷ 비유왕 ( 20대, 427 ~ 455 )

 - 나제 동맹을 체결하여 장수왕의 남하 정책에 대항함

⑸ 개로왕 ( 21대, 455 ~ 475 )

 - 고구려 장수왕의 압박을 받자 북조의 북위에 국서를 보내 도움을 

 요청했으나 실패, 이후 한성이 함락당해 전사함

⑹ 문주왕 ( 22대, 475 ~ 477 )

 - 한성이 함락된 이후 웅진으로 천도

⑺ 동성왕 ( 24대, 479 ~ 501 )

 결혼 동맹 체결 ( 신라 소지 마립간, 493 )

⑻ 무령왕 ( 25대, 501 ~ 523 )

 - 지방에 22개의 담로를 설치

 - 중국 남조의 양과 국교 강화

⑼ 성왕 ( 26대, 523 ~ 554 )

 - 사비로 천도하고 국호를 남부여로 바꿈( 538 )

 - 중국남조 및 왜와의 교류

 - 중앙 관제 정비 : 22개의 중앙 관서를 정비함

 - 행정 제도 개편 : 수도의 5부, 지방의 5방 체제

 - 신라와 연합하여 한강 하류 지역을 탈환

 - 신라의 배신으로 상실 이후 신라를 공격하다가 성왕이 전사( 554, 관산성 전투)

⑽ 무왕 ( 30대, 600 ~ 641 )

 - 익산으로 천도 시도, 미륵사 건립 

 

● 멸망

 - 신라를 공격하여 대야성을 함락시키는 등 40 여성을 빼앗음

 -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660년 멸망

 

 

 

※ 보충 설명

 

백제가 고구려, 부여 계통임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

 - 온조왕의 백제 건국 설화

 - 고구려 초기의 돌무지무덤과 비슷한 서울 석촌동 고분 양식

 - 5부제 행정 제도가 유사하고 백제에서도 시조를 동명왕으로 생각함

 - 백제 성황 때 나라 이름을 남부여로 개칭

 

 

● 칠지도

 - 현재 일본의 이소노카니 신궁에 보관되어 있는 칼이다.

 근초고왕때 왜왕에게 보낸 것으로 당시 양국의 친교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다. 한편 일본에서는 일본서기에 372년

 백제의 사신이 신공 황후에게 칠지도를 바쳤다는 기록의 실물

 로 주장하며,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이용하였다.

 

● 관산성 전투 ( 554 )

 - 백제 성왕은 신라 진흥왕과 함께 551년에 고구려에 빼앗겼던 한강

 하류의 6개 군을 탈환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신라 진흥왕이 

 배신하여 이 지역을 점령하자, 양국 간의 동맹 관계는 깨졌고, 

 성왕은 신라를 공격하였으나 관산성 전투에서 김무력에게 패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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