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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급 공무원/한국사

한국사정리 / 고구려의 성장과 발전

by 바방 2020.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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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구려의 성장과 발전

 

 

● 건국

 - 부여의 이주민들이 압록강 중류의 토착 세력과 결합하여 

  졸본에서 건국하였다. 이후 유리왕 때 국내성으로 천도

 

● 성장 및 발전

⑴ 태조왕( 6대, 53 ~ 146 )

 - 본격적인 영토 확장, 옥저를 복속

 - 왕위 계승권 확립 ( 계루부에서 세습 )

⑵ 고국천왕( 9대, 179 ~ 197 )

 - 부족적인 전통을 가졌던 5부를 행정적인 5부로 개편

 - 왕위 계승을 형제 상속에서 부자 상속으로 바꿨다.

 - 진대법 실시 ( 194 )

⑶ 동천왕 ( 11대, 227 ~ 248 )

 - 서안평 공격에 실패

 - 위의 장수인 관구검의 침략을 받아 한때 환도성이 함락

⑷ 미천왕 ( 15대, 300 ~ 331 )

 - 압록강 하류 지역인 서안 평 점령

 - 낙랑 및 대방 축출 ( 313 )

⑸ 고국원왕 ( 16대, 331 ~ 371 )

 - 선비족 전연의 침입으로 수도가 함락되었다 ( 342 )

 - 백제 근초고왕에게 공격을 받아 평양성에서 전사함(371)

⑹ 소수림왕 ( 17대, 371 ~ 384 )

 - 불교 수용 ( 372 ) : 전진의 순도로부터 수용

 - 태학 설립 ( 372 )

 - 율령 반포 ( 373 )

⑺ 광개토대왕 ( 19대, 391 ~ 412 )

 - 독자적 연호인 영락을 사용

 - 요동과 만주 지방을 확보 하였으며, 백제를 격파하고

 한강 이북까지 진출하였다.

 - 신라 내물 마립간의 요청으로 왜군을 격퇴, 이후 금관가야

 중심의 전기 기야 연맹이 해체되었다.

⑻ 장수왕 ( 20대, 413 ~ 491 )

 - 남진 정책 : 평양으로 천도 ( 427 )

 -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 475 ) 

 - 한강이남까지 진출 -> 충주 고구려비

 - 경당 설치

⑼ 문자왕 ( 21대, 491 ~ 519 )

 - 부여를 복속 ( 494 )

 - 고구려 최대 영토를 확보

 

● 멸망

 - 나당 연합군에 의해 668년 멸망하였다.

 

 

 

 

※ 보충 설명

 

● 진대법

 - 매년 3월부터 7월까지 나라에서 종자 및 곡물을 대여하고

 10월에 추수를 하면 국가에 상환하도록 하였다.

 

● 충주 고구려비

 - 1979년 단국대 정영호 교수팀에 의해 발견된 충주 고구려비는

 장수왕의 남하 정책 결과 남양만에서 죽령에 이르는 지역을 

 점령한 이후 세운 척경비이다. 비에는 400여 자가 기록되어 있으며

 고구려의 왕을 대왕으로 부르고 신라를 동이로 지칭하여 점령지인

 신라의 왕과 신하에게 의복을 하사하는 등 고구려 우월주의적

 입장에서 니용이 기술되어 있다.

 

● 광개토대왕릉비 ( 일명 호태왕비 ) 

 - 중국 길림성 집안에 위치해 있으며 , 장수왕 2년에 건립하였다.

 총 4면에 글씨가 있으며, 판독 글자는 1775자이다. 내용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부는 고구려 개국 설화 등 건국 과정과 비 건립

 경위가 기술되어 있으며, 제2부는 광개토대왕의 정복 활동이 연대순으로

 기술되어 있다. 여기에서 신라를 도와 왜구를 격퇴한 사실을 비롯하여

 후연, 비려, 숙신 격파 및 백제 격파 등 64성 및 1400여 개의 촌락을 

 공략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제3부는 광개토대왕릉을 지키는 수묘 연호

 300여 호의 명단과 배치 상황, 묘지 관리 지침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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