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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급 공무원/한국사

한국사 정리 / 발해의 역사

by 바방 2020.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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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발해의 역사



발해의 건국과 발전

   ⑴ 고왕(대조영, 1대. 698 ~ 719)

     - 연호 '천통'

     - 동모산에서 진국 건립(698)

     - 당으로부터 발해 군왕으로 불려짐(713) -> 이후 국호를 발해로 고침

     - 소수의 고구려인과 다수의 말갈족으로 구성

   ⑵ 무왕(대무예, 2대, 719 ~ 737)

     - 연호 '인안'

     - 북만주 일대를 장악

     - 흑수 말갈 문제로 당과 대립

     - 돌궐, 일본과는 우호 관계, 당과 신라는 견제

     - 장문휴의 수군으로 하여금 산둥 반도 등주를 선제 공격

   ⑶ 문왕(대흠무, 3대, 737 ~ 793)

     - 연호 '대흥', '보력'

     - 상경 용천부로 천도(당 문화의 영향을 받음)

     - 국립 대학인 주자감 설치

     - 3성6부(중앙조직)

     - 발해 국왕으로 경상

   ⑷ 선왕(대인수, 10대, 818 ~ 830)

     - 대부분의 말갈족을 복속시키고 요동 지역으로 진출

     - 지방 행정 조직 : 5경 15부 62주

     - 중국에서 해동성국으로 부를 정도로 번성



●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

   - 대조영과 그 후손들의 고구려 지향성은 일본과의 외교 과정에서 

     매우 뚜렷하게 드러남

   - 속일본기의 기록에 따르면 759년 발해의 문왕이 일본에 사신을

     보내면서 스스로를 고려국왕 대흠무라고 불렀으며 일본에서도 

     발해의 왕을 고려국왕 으로 부름

   - 발해를 가리켜 자주 고려라고 불렀으며, 발해의 사신을 고려의

     사신으로 표현한 사례가 일본 측 기록에 많이 있음



● 발해의 중앙 정치 구조

   - 당의 3성 6부제를 근간으로 하였으나 삼국시대 귀족 회의의 전통을

     계승하여 정당성을 중심으로 운영

   - 6부 명칭과 정책 집행 체제가 이원적으로 이루어 진다는 점을 통해 

     발해의 정치적 독자성을 확인훌 수 있음



 

 ※ 보충 설명



● 남북국 시대

   - 통일 신라의 발해가 병존한 시기를 말한다. '남북국'이란 용어가 최초로

    쓰인 것은 조선 후기 유득공의 발해고이다.



● 해동성국

    - 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라는 뜻으로서, 9세기 선왕 때 전성기를 맞이한

      발해를 중국에서 높여 부른 말이다.



● 등제서열 사건(효공왕)

    - 신라의 최언위가 발해의 오광찬보다 빈공과 등제 석차가 앞서자 당에 

      사신으로 온 오소도가 아들의 석차를 올려 달라고 요청하였다가 거절

      당한 사건이다.



● 쟁장 사건

   - 당에 간 발해의 사신이 신라의 사신보다 상석에 앉을 것을 요청하였다가

     거절당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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