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갑오개혁(1894), 을미개혁(1895)
● 조선의 자주적 개혁 추진 - 교정청 설치
● 제1차 갑오개혁
⑴ 일본이 경복궁을 점령하였고 민씨 정권을 축출한 후 김홍집을 수반으로 하는 친일 내각을
조직(제1차 김홍집 내각) -> 이후 청-일 전쟁을 일으키고 조선 정부에 개혁을 강요하면서
군국기무처를 설치
⑵ 제1차 갑오개혁의 주요 내용
- '개국' 연호 를 사용하여 청의 종주권을 부인
- 왕실 사무와 정부사무를 분리하여 왕권을 축소
- 6조를 8아문으로 개편하고 과거 제도를 폐지
- 사회적으로는 노비제 등 신분 계급을 타파하고 봉건적 악습 폐지
- 경무청 설치, 탁지아문으로의 재정 일원화, 은본위 화폐 제도 등을 공포
● 제2차 갑오개혁
⑴ 청일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일본은 내정 간섭을 본격화 함
⑵ 박영호(내무), 서광범(법무)등을 입각시켜 제2차 김홍집 연립 내각을 구성
⑶ 최초의 근대적 헌법의 성격을 가진 홍범 14조를 발표한 직후 추진된 제2차
개혁에서는 군국기무처를 폐지하였고 213건의 개혁안을 실시
⑷ 개혁 내용
- 의정부를 내각으로 개칭, 각 아문을 부로 변경, 농상무아문과 공무아문을 농상공부로
개편(8아문을 7부로 개편)
- 궁내부의 관제를 대폭 간소화하였고 군현제를 폐지(8도를 23부로 재편하고 337군을 설치)
- 사법권을 행정권으로부터 독립시킴
● 을미개혁(제3차 개혁)
⑴ 삼국 간섭(러, 프, 독)으로 요동반도를 청에게 환부하자 조정 내에 명성황후 등 친러시아
세력이 성장함
⑵ 미우라를 공사로 임명한 일본은 낭인들을 동원하여 을미사변을 일으키고 급진적 개혁을 실시
⑶ 을미개혁의 내용
- 태양력 사용, 종두법 실시, 소학교의 설립, 우편 사무 개시
- 단발령, 연호(건양) 제정, 서울에 친위대와 지방에 진위대 설치
⑷ 을미의병과 아관파천으로 을미개혁은 중단됨
※ 보충 설명
● 교정청
- 일본 정부가 조선에 내정 개혁안을 제출하였을 때 조선 정부는 일본 군대의 철수를 우선
문제로 내세웠으며 1894년 6월 왕명으로 '교정청'을 설치하고 당상 15명과 낭청 2명을
임명하여 자주적으로 개혁을 실시하려 하였다.
● 8아문
- 내무아문, 외무아문, 탁지아문, 군무아문, 법무아문, 학무아문, 공무아문, 농상아문
● 삼국간섭(1895)
- 일본의 랴오둥 진출에 위협을 느낀 러시아가 독일과 프랑스를 끌어들여 일본에 압력을
가한 사건이다. 이에 일본은 랴오둥 반도를 청에 돌려 주었고 일본의 세력은 약화되었다.
● 명성 황후 시해 사건
- 명성 황후는 대한 제국이 수립된 후에 황후로 추봉되었다. 동학 농민 운동으로 정국이
혼란스러울 때 침략 공세를 펴던 일본은 갑오개혁에 관여하면서 흥선대원군을 내세워
명성 황후 세력을 제거하려 하였다. 명성 황후는 일본의 야심을 간파하고 일본은 배후로
한 개혁 세력에 대항하였다. 그러나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압력이 거세지자 명성
황후는 친러 정책을 내세워 일본 세력에 대항하였다. 삼국 간섭으로 대륙을 침략하려던
일본의 기세가 꺽이자 조선 정계의 친러 경향은 더욱 굳어졌다. 이에 일본 공사 미우라는
일본의 한반도 침략 정책의 장애물인 명성 황후와 친러 세력을 일소하고자 친일 세력과
공모하여 1895년 8월 20일 일본 군대와 정치 낭인들을 동원하여 왕궁을 습격한 후 명성
황후를 시해하고 그 시체를 불사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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