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독립 협회와 대한 제국
● 독립 협회의 설립 배경
- 아관파천 이후 친 러시아 정권이 수립되자 국가의 자주성이 손상 되고 열강의 이권
침탈이 가속화됨
- 1896년 서재필은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이 국민의 계몽이라고 판단하여 <독립신문>
을 발행
- 친미파 세력이 중심이 된 정동 구락부의 윤치호와 이상재, 건양 협회의 안경수, 개신
유학자 남궁억 등이 서재필과 함꼐 독립 협회를 창립
● 독립 협회의 활동
- 독립 협회는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을 건립하고 모화관을 헐어 독립관을 건축
- 만민 공동회를 개최 -> 한러 은행 폐쇄와'절영도'조차 요구를 좌절시켰다.
- 만민 공동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민중 집회였으며 이는 개화 새력과
민중의 결합을 의미한다.
- 관민 공동회 개최 : 만민 공동회의 지탄을 받던 보수 정권이 무너지고 박정양이 집권한
후 헌의 6조를 채택하였다. 역사상 최초의 의회 설립 단계까지 갔던
'중추원 신 관제'를 반포하였다.
- 독깁 협회의 해산(1898) : 고종이 황국 협회 등을 동원하여 강제로 해산 시킴
● 대한 제국의 수립
- 아관파천 이후 열강의 이권 침탈 등으로 국내의 여론이 악화되고 고종의 환궁을 독촉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1897년 고종은 경운궁으로 환궁
- 고종은 환궁 이후 칭제건원을 추진하여 연호를 '광무'라 하고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침
- 고종은 대한국 국제를 반포하여 자주 독립과 전제 황권 강화를 표방
- 원수부를 설치하는 등 구본신참을 원칙으로 점진적 개혁을 추친(광무 개혁)
● 광무 개혁의 내용
- 황실 재정 강화를 위해 종래 탁지부, 농상공부에서 관할하던 전국의 광산, 철도, 홍삼 제조,
백도화 주조 등을 궁내부의 내장원으로 이관
- 상세를 징수하고 상무사를 조직하여 영업세 징수를 맡김, 이어 황실 직영의 방직 공장, 유리
공장, 제지 공장 등을 설립
- 근대적 토지, 지세 제도를 마련(양전 사업과 지계 발급)
- 금 본위제 화폐 제도를 채택
※ 보충 설명
● 춘생문 가선
- 을미사변 이후 친일 정권에 포위되어 불안에 떨던 고종을 궁 밖으로 빼내어 친일 정권을
타도하고 새 정권을 수립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이범진-이윤용 등
정동파 관료와 친위대 소속 군인들이 참여 하였다.
● 정동 구락부
- 고종 31년 서울에서 조직된 서양인들과 치미적 조선인들의 사교 친목 단체이다. 조선인 회원은
민영환-윤치호-이상재-서재필-이완용 등이었다. 한편 외국인으로는 미국 공사 실과 프랑스
영사 플랑시를 비롯해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등이 있었다.
● 황국 협회
- 전국의 보부상으로 조직된 단체로서 보수 세력은 이들에게 만민 공동회가 열리는 곳에서
소란을 피우게 하고 이를 빌미로 독깁 협회를 해산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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