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임오군란, 갑신정변
● 임오군란(1882)
- 별기군 설치 후 구식 군대에 대한 차별 때문에 구식 군대가 봉기를 일으킨 사건
- 김장손 등이 민겸호, 이최응, 호리모토 등을 살해하고 일본 공사관을 습격함
- 임오군란 이후 흥선 대원군이 재집권하여 별기군 폐지, 통리기무아문 폐지 등
과거 체제로의 복귀를 시도했으나 청군 3000명이 파견되어 임오군란이 진압됨,
이로써 조선에 대한 청의 내정 간섭이 본격화 되었다.
- 제물포 조약 체결
① 배상금 50만원을 지불하고 일본에 사절단을 파견함. 이때 박영효 등이 사절단
으로 파견되면서 태극기가 처음 사용됨
② 일본 공사관 보호라는 명목으로 일본 경비병이 상주하게 되었다.
- 청은 군대를 상주시키고 묄렌도르프 등을 고문으로 파견함
- 또한 청 상인의 특권을 명시한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이 체결됨
● 개화 세력의 분화와 갑신정변
- 온건 개화파
① 점진적인 개혁을 지향하였고, 민씨 정권과 결탁하여 '친청' 정책을 추구
② 대표적 인물 : 민영익, 어윤중, 민승호, 조영하, 김홍집, 김윤식 등
- 급진 개화파(개화당)
①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본받아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고자 하였고, 청의 내정
간섭과 정부의 사대 정책을 비판
② 대표적 인물 :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서재필 등
● 갑신정변(1884)
- 배경과 과정
① 급진 개화파는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하겨 했으나 실패
② 한편 청-불 전쟁으로 청군 일부가 철수하자, 급진 개화파는 일본 공사'다케조에'의
군사적 지원을 약속받아 우정국 개국 축하연을 계기로 정변을 일으킴
③ 온건 개화파 인사들을 제거하고 개화당 정부를 수립한 이후 14개조의 정강을 발표
④ 그러나 청군의 개입으로 3일 천하로 끝났으며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은
일본으로 망명
- 한계와 의의
① 근대 국가를 지향하는 최초의 정치 개혁 운동
② 그러나 토지 제도 개혁을 배제하는 등 위로부터의 개혁 추진의 한계 때문에 민중의
지지 획득에는 실패
- 결과
① 한성 조약 체결 : 갑신 정변 과정에서 소실된 일본 공사관의 신축 비용 문제에 대한 협약
② 텐진 조약(1885) 체결 : 일본은 청과 동등하게 조선에 대한 파병권을 획득
● 거문도 사건(1885 ~ 1887)
-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영국이 거문도를 불법 점령한 사건
- 거문도 사건 이후 유길준이 청과 열강이 보장하는 '한반도 중립화론'을 제시
'9급 공무원 > 한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사 정리 / 갑오개혁, 을미개혁 (0) | 2021.01.30 |
---|---|
한국사 정리 / 동학 농민 운동(1894) (0) | 2021.01.28 |
한국사 정리 / 흥선 대원군의 개혁정치와 정책 (0) | 2021.01.24 |
한국사 정리 / 조선 후기의 문화적 특징 (0) | 2021.01.19 |
한국사 정리 / 향촌 질서의 변화, 천주교-동학, 농민의 항거 (0) | 2021.01.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