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붕당 정치의 변질과 탕평 정책
● 붕당 정치의 변질
- 경신환국(1680) : 경신대출척, 남인의 영수 허적이 왕실 천막을 사적으로 사용한 것과
허적의 아들인 허건의 역모 사건이 원인이 된다. 이 사건으로 서인이
집권하였고, 서인은 남인에 대한 처벌 수위를 두고 강경파인 노론과
온건파인 소론으로 분열
- 기사환국(1689) : 서인이 장희빈의 아들 원자 명호 문제에 반대하였다가 축축됨
- 갑숙환국(1694) : 폐비 민씨(인현 왕후)의 복위 과정에서 남인이 축출당하고 서인이
권력을 장악하였다.
● 영조의 탕평 정치 - 완론 탕평
⑴ 영조 즉위 초 탕평의 교서를 발표하고, 노론과 소론을 번갈아 등용하는 등 혼란한
정국을 바로잡으려 하였으나 이인좌의 난(소론과 일부 남인이 주도)이 발생한 이후
에는 붕당 관계를 재조정하려 함
⑵ 탕평과 중심의 정국 운영(완론 탕평)
- 영조는 붕당의 뿌리를 제거하기 위하여 공론의 주재자로서 인식되던 산림의 존재를
부정하였고 서원을 대폭 정리하였다.
- 이조 전랑의 권한을 약화시킨다.
⑶ 영조의 개혁 추진
- 영조는 민생 안정과 산업 진흥을 위한 개혁을 추진
- 균역볍, 수성윤음의 발표
- 가혹한 형벌 폐지, 사형수에 다한 삼심제, 신문고 제도의 부활, 청계천 준설
- 속대선, 동국문헌비고 간행
● 정조의 탕평 정치 - 준론 탕평
- 규장각과 장용영(왕의 친위 부대) 창설 -> 왕권강화
- 초계문신제 시행 : 신진 인물이나 중하급 관리들 가운데 능력 있는 사람들을 선발하여
재교육시키는 초계문신제를 시행함
- 화성에 신도시(수원화성) 설치
- 수령이 군현 단위의 향약을 직접 주관하게 하여 사림의 영향력을 줄이고자 한다.
- 민생 안정 : 서얼과 노비에 대한 차별 완화, 통공 정책(신해통공, 자유로운 상업 허용)
- 문화 발전 : 청나라로부터 고급도서집성 을 수입, 대전통편, 동문휘고, 탁지지,
무예도보통지 등 편찬
※ 보충 설명
● 숙종 정책
- 노산 대군의 시호를 올리고 묘호를 단종이라 하였고, 대보단을 세워 왕이 직접 명나라
신종 황제를 제사하였다, 한편 충무공 이순신의 사우에 현충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강감찬 사당을 건립하였다.
● 균역법 실시를 위한 반영
- 영조는 균역법을 시행하기 전 창경궁 홍화문에 나아가 호포제, 결포제 등 군정 개혁을
위한 백성들의 의견을 물었다.
● 속대전과 대전통편
- 속대전 : 영조 22년에 경국대전 시행 이후에 공포된 법령 중에서 시행할 법령만을
추려서 편찬한 법전이다. 영조가 직접 서문을 지어 강행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 대전통편 : 정조 9년 경국대전과 속대전 및 그뒤의 법령을 통합하여 편찬한 법전이다.
경국대전의 원 내용은 원, 속대전의 내용은 속, 그리고 그뒤의 법령은 증자로
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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