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문벌귀족 사회의 성립과 동요, 북방 민족과의 대외 관계
● 문벌귀족 사회의 모순
⑴ 이자겸의 난(1126)
- 11세기 이래 대표적인 문벌 귀족인 경원 이씨 가문은 왕실의
외척이 되어 80여년간 정권을 잡았다.
- 이자겸 세력은 대내적으로 문벌 중심의 질서를 유지하고, 대외
적으로 금과 타협하는 정치적 성향을 보였다.
- 이자겸은 반대파를 제거하고 척준경과 함꼐 난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였다.(1126)
- 이자겸의 난은 중앙 지배층 사이의 분열을 드러냄으로써 문벌
귀족 사회의 붕괴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⑵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1135)
- 서경파의 서경 천도 운동 : 자주적 혁신 정치 주장
- 칭제 건원과 금나라 정벌 주장 -> 개경 귀족 세력의 반대
- 묘청의 난 -> 김부식에게 진압되었다.
● 무신정변의 발발과 무신정권의 성립
⑴ 무신정변
- 정중부,이의방 등의 무신들은 정변을 일으켜 다수의 문신을 죽이고
의종을 폐하여 거제도로 귀양 보낸 후 명종을 세워 정권을 장악하였다.
- 무신들은 중방을 중심으로 권력을 행사하면서 주요 관직을 독차지하고
토지와 노비를 늘려갔으며, 저마다 사병을 길러 권력 쟁탈전을 벌였다.
⑵ 무신 간의 정권 쟁탈전
- 정중부 : 이의방을 제거하고 중방을 중심으로 권력을 행사하였다.
- 경대승 : 정중부를 제거하고 신변보호를 위해 사병 집단인 도방을 설치하였다.
- 이의민 : 경대승의 병사 후 정권을 잡았으나, 최충헌,최충수 형제에게 피살 되었다.
- 최충헌 : 이의민을 제거하여 최씨 무신정권 기반을 확립하고, 무신간의 권력
쟁탈전을 수습하여 강력한 독재 정권을 이룩하였다.
⑶ 최씨 무신정권 시대
① 최충헌 집권(1196 ~ 1219)
- 초기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하여 봉사 10조와 같은 사회 개혁책을 제시하면서도
농민 항쟁의 진압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 교정 도감을 설치하여 최고의 정치 기구로 권력을 행사하였다.
- 사병 기관인 도방을 부활시켜 신변을 경호하였다.
② 최우의 집권(1219 ~ 1249)
- 자기 집에 정방을 설치하여 모든 관직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하였다.
- 최우는 문학적인 소양과 함께 행정 실무 능력을 갖춘 문신들을 등용하여
고문 역할을 담당하게 하였다.
- 야별초에서 비롯하여 좌별초, 우별초, 신의군으로 확대 구성하였다.
● 북방 민족과의 대외 관계
⑴ 거란족의 침입
- 제1차 침입(성종 12년, 993) : 서희의 외교 담판 -> 강동 6주 획득
- 제2차 침입(현종 1년, 1010) : 강조의 정변을 빌미로 거란의 성종침입, 양규의 활약
- 제3차 침입(현종 9년, 1018) : 강감찬의 귀주 대첨
⑵ 여진과의 관계
- 여진과의 1차 접촉에서 패배
- 별무반의 조직 : 숙종 때 윤관의 건의로 신기군, 신보군, 항마군으로 편성
- 윤관의 여진 정벌(예종 2년, 1107) -> 동북 9성 개척
- 금의 건국 : 거란과 북송을 멸망시키고 고려에 군신 관계를 요구 -> 사대관계 체결
⑶ 몽골과의 관계
- 고려와 몽골의 첫 첩촉(강동의 역, 1218)
- 제1차 침입 : 몽골 사신 저고여의 피살 -> 살리타의 침입 -> 박서의 항전 -> 개경이
포위되어 강화 -> 몽고는 다루가치 설치 후 철군 -> 최우는 강화도로 천도
- 제2차 침입 : 김윤후는 처인성에서 적장 살리타를 사살, 대구 부인사에 보관되었던
초조대장경 소실
- 제3차 침입 : 황룡사 9층탑 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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