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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급 공무원/한국사

한국사 정리 / 삼별초의 항쟁과 원간섭기

by 바방 2020.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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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삼별초의 항쟁과 원간섭기



삼별초의 대몽 항쟁(1270 ~ 1273)

    - 원종 11년 개경으로 환도 -> 몽골의 간섭을 받게 되었다.

    - 강화도에서 배중손의 주도로 승화후 온을 왕으로 추대함

    - 진도로 남하하여 용장성을 쌓고 항전하였으나, 김방경이 이끄는

      여,몽 연합군의 공격으로 배중손이 전사하였다.

    - 김통정의 지휘 아래 제주도로 이동하여 항쟁 -> 삼별초가 진압 

      당한 후 제주도에 탐라총관부 설치(1273)



● 원 간섭 이후 정치적 변화

    - 원의 일본 원정에 고려군 동원 : 정동행성 설치

    - 원의 영토 확보 : 쌍성총관부, 탐라총관부

    - 쌍성총관부는 공민왕 시기에 무력으로 수복함

    - 관제 변경 : 중서 문하성, 상서성은 첨의부로 개편되고 도병마사는 

                     도평의사사, 중추원은 밀직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 원의 내정 간섭과 인적

    - 정동행성 : 일본 정벌 실패 후 내정 간섭 기구화

    - 만호부 설치 : 고려의 군사 간섭 기구

    - 결혼도감을 통한 공녀 징발

    - 인삼, 약재, 매 등의 특산물 징발 -> 매를 징발하게 위해 응방을 설치



● 반원 자주 정책의 추친


   ⑴ 충렬왕(1274 ~ 1308)

     - 홍자번이 올린 편민18사 채택

     - 원의 직속으로 있던 동녕부와 탐라총관부 관할 지역을 돌려받았다.

   ⑵ 충선왕(1298, 1308 ~ 1313)

     - 정방의 일시적 폐지

     - 개혁기구 : 사림원

     - 소름의 전매제를 시행

     - 상왕으로 물러난 이후 북경에 만권당을 설치

   ⑶ 충숙왕 : 찰리변위도감

   ⑷ 충목왕 : 정치도감

   ⑸ 공민왕때의 개혁정치 - 원,명 교체기



● 신진 사대부의 성장

    - 경제적으로는 지방의 중소 지주층, 신분적으로는 향리 출신이 대부분을 차지함

    - 성리학을 사상적 배경으로 받아들였고, 과거를 통해 중앙 관료로 진출함

    - 권문세족의 친원적, 친불교적 성향에 대해 반대하였고, 대외적으로는

      친명적 경향을 띰

    - 신진 사대부의 분열 : 급진파 사대부(정도전, 왕조교체)

                                  온건파 사대부(정몽주, 점진적 개혁, 전면적 토지 개혁 반대)




 ※ 보충설명



● 정동행성의 구성

    - 정동행성의 최고 책임자인 승상은 고려 왕이 겸임했고, 승상아래에는

      평장, 정사, 우승, 좌승, 참지정사, 원외랑, 낭중, 도사등이 있다.



● 찰리 변위 도감

   - 권세사가 점령한 전민을 색출하기 위해 설치하였으나, 실효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 만권당

   - 1314년 원에서 충선왕은 만권당을 설치하여 이제현 등 고려 유학자와 조맹부 등

     한족 출신 유학자들을 불러 모아 서로 교류하게 하였다. 이로써 고려의 학문과

     사상이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 경제적 착취  

   - 원은 고려에 금,은,자기,나전,칠기,포,곡물,인삼 등을 요구하였고, 이는 모두 농민의

     부담이 되었다. 나아가 처녀,과부,환관까지도 징구하였다. 이를 위해서 결혼도감과

     과부처녀추고별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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