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의열단, 한인 애국단, 한중 연합 작전, 한국광복군
● 의열단(1919, 김원봉)
① 조선 혁명 선언(1923, 신채호) : 의열단 선언문으로 작성
② 관련 의거
- 부산 경찰서 투폭 의거(1920, 박재혁)
- 일먕 경찰서 투폭 의거(1920, 최수봉)
- 조선 총독부 투폭 의거(1921, 김익상)
- 상해 일본군 다나카 육군 대장 저격 시도(1922, 오성륜-김익상 : 황포탄 의거)
- 종로 경찰서 투폭 의거(1923, 김상옥)
- 일본 궁성 이중교 투폭 의거(1924, 김지섭)
- 동양 척식 주식 회사와 조선 식산 은행에 투폭(1926, 나석주)
● 한인 애국단(1931, 김구)
- 일본 왕의 마차에 투폭(1932, 이봉창)
- 상해 홍커우 공원 의거(1932, 윤봉길) : 중국 국민당 정부가 임시 정부를 적극적 지원하게 된 계기
● 1930년대 한중 연합 작전
- 양세봉이 지휘하는 조선 혁명군 - 중국 의용군과 연합 - 영릉가, 홍경성 등지에서 일본군을 격퇴
- 지청천이 지휘한 한국 독립군 - 중국 호로군과 연합 - 쌍성보 전투, 경박호 전투, 사도하자 전투,
대전자령 전투, 동경성 전투 등에서 일본군을 격퇴
● 조선 의용대(1938)
- 김원봉이 조직한 무장 부대로서 중국 국민당과 함께 항일전을 전개
- 중국 관내에서 조직된 최초의 조선인 무장 조직
- 1942년 조선 의용대 일부가 한국광복군에 편입되어 광복군 1지대가 되었고 김원봉은
부사령관에 취임
-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는 조선 독립 동맹에 편입되어 조선 의용군으로 개편됨
● 한국광복군(1940)
- 한국광복군은 연합군의 일원으로 태평양 전쟁에 참여함
- 한영 군사 협정(1943)에 따라 10여 명의 비전투 요원들이 영국군과 함께 미얀마 전선 등에
참전(주로 암호 분석, 포로 심문, 통역 및 심리전 활동)
- 미 OSS 부대와 연합하여 국내 진입 계획을 세우지만 일제의 항복으로 실현되지 못함
※ 보충 설명
● 만주 사변
- 1931년 일제가 남만주 철도 폭파 사건을 조작하고 이를 구실로 만주를 무력으로 점령한
사건이다. 이듬해 일제는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워 대륙 침략의 근거지로 삼았다.
● 추수 투쟁-춘황 투쟁(1931)
- 만주 사변 후 한인 공산주의자들은 소작료 인하와 농민들의 생존권 및 자치권 확보를 요구하며
각지에서 소규모 유격대를 중심으로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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