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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급 공무원/한국사

한국사 정리 / 옥저와 동예 알아보겠습니다.

by 바방 2024.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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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압박, 군장국가로 머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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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학창시절만 해도 외모에서 ‘키’가 그렇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정말 ‘키’가 중요해졌죠. 키 작으면 ‘루저’라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는 걸 보면 좀 씁쓸합니다. 그래서인지 지하철 광고에 ‘사지연장(다리 늘리기 수술)’ 광고나 ‘성장촉진제’ 광고가 많이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정말로 성장촉진제가 필요한 나라가 있었어요. 바로 옥저와 동예입니다. 한반도 동쪽에 치우쳐 있어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기도 어려웠고요, 강대국인 고구려의 압박으로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정치적으로 왕도 탄생하지 못했고, 여전히 군장이 다스리는 군장국가에 머물렀습니다. 옥저와 동예에서는 그 군장을 읍군이나 삼로라고 불렀어요.



동해안에 위치한 옥저, 고구려에 해산물을 공납하다


옥저는 동해안에 위치해 있어요. 그러니 주요 경제생활이 바다랑 관련되어 있죠. 해산물이 유명했어요. 우리가 조금 전에 살펴본 고구려 사람들이 옥저 산 소금, 생선 등을 날라다가 먹은 거죠. 옥저는 자신들의 특산물을 ‘공납’이란 이름으로 고구려에 바쳐야 했습니다. 제천행사는 당연히 안 지냈죠. 다 뺏기는데 이걸 기념하겠어요? 아마도 다 같이 통곡하는 날이었을 거예요. 



골장제와 민며느리제, 옥저만의 문화를 만들다


옥저는 아주 독특한 장례문화가 있습니다. 만약에 가족들 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해볼게요. 그럼 시체를 본격적으로 매장하지 않고 땅에 아주 얕게 묻어요. 그럼 살과 내장은 부식되고 뼈만 남게 됩니다. 그럼 그걸 나무상자 안에 보관해요. 그 나무상자 안에는 이미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뼈가 있습니다. 왜 이렇게 했을까요? 혹시 옥저 사람들은 뼈 콜렉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요, 힌트는 가족들의 뼈를 한 군데 모아둔 점입니다.

눈치 채셨나요? 옥저는 가족공동체를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해서 가족 공동무덤을 만든 거예요. 또, 이 나무상자에 쌀 항아리를 걸어놓았단 기록이 있어요. ‘엄마, 아빠 죽어서는 흰쌀밥 많이 드세요~’ 하는 뜻이 담겨 있어요. 뼈가 담긴 그 목곽을 두고 제사를 지낸다고 해서 가족 공동무덤을 골장제라고도 부릅니다.

또 민며느리제라는 결혼제도가 있었어요. 이건 서옥제의 반대라고 생각하면 돼요. 여자가 어릴 때 남자 집에서 돈을 주고 여자를 사옵니다. 그런 다음 남자 집에서는 어린 신부에게 허드렛일 같은 걸 시키다가 ‘때’를 기다려요. 그때는 바로, ‘첫날밤’입니다. 꺄! 여자가 아기를 가질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남자와 합방을 시켰어요. 결국엔 민며느리제도 여성의 출산력을 중시해서 나오게 된 거죠. ‘형사취수제’, ‘서옥제’, ‘민며느리제’ 세 개를 묶어서 ‘노동력 중시’라고 정리하면 됩니다.



산악지대 속 동예, 작은 조랑말 ‘과하’를 타다

 


제주마


동예는 강원도 지역에 위치해 있어요. 강원도 하면 뭐가 떠올라요? 감자?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스키장이 떠오릅니다. 유명한 스키장이 다 강원도에 밀집해 있을 정도로 산악지대가 많죠. 그래서 옛날부터 동예는 작은 조랑말이 유명했습니다. 가파른 산을 올라가려면 백마 탄 왕자님의 ‘롱다리 말’은 무용지물이거든요. 다리가 길어서 휘청대기만 하고 산을 못 올라가요.

이런 지역에 유리한 건 다리가 짧고 허벅지가 딴딴한 조랑말입니다. 달그락대면서 잘 올라갈 수 있어요. 그 말이 얼마나 ‘숏다리’이냐면요, 작은 과일 나무 아래를 지나다닐 수 있는 정도라고 해요. 그래서 과(과일나무)하(아래)마(말)라고 표현합니다. 짧은 화살인 단궁도 유명했어요. 동예도 동해안에 위치해 있으니 어로 활동이 활발했겠죠? 또 다른 특산물로 반어피가 있습니다. 물범 가죽을 뜻해요.

제천행사 무천과, 부족 간 경계 지키는 책화로 동예만의 문화를 만들다
거리상으로 옥저보다는 고구려와 조금 더 멀었기 때문에 동예는 공납을 덜 뜯겼어요. 그래서 10월엔 추수를 감사하는 제천행사를 지냈습니다. 무천이라고 불러요.

동예는 산과 산을 경계로 사람 사는 곳이 나뉘어 있었어요. 근데 그 마을 간 경계를 아주 중시해서 경계를 넘어오면 소나 말로 배상을 해야 했습니다. 이걸 책화1)라고 해요. 여러분은 어렸을 때 “책상에 그어놓은 금 넘어오면 다 내 거!” 하고 짝꿍이랑 싸워본 적 있으세요? 선생님이 초등학생일 때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있어 완전한 적이었어요. 패거리가 나뉘어 있어서 남학우랑 체육시간에 손을 잡아야 할 땐 소매를 내려서 살이 안 닿게 잡기까지 했어요. 왜 그랬었는지 참···.

심지어 남자 짝과 같이 쓰는 책상에는 가운데 금을 쭉 그어놓았습니다. 그 금을 넘어가면 물건을 뺏겼어요. 지우개가 넘어오면 넘어온 부분만큼 칼로 잘라갔습니다. 책화가 딱 그런 거예요. 부족 간 경계를 중시해서 침범할 경우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축인 소와 말로 배상을 해야 했던 거죠. 하지만 결혼을 할 때는 반드시 그 경계를 넘어서서 다른 부족의 사람과 해야 했습니다. 아직까지도 동예에는 씨족사회의 전통이 남아 있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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