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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급 공무원/한국사

한국사 정리 / 고구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by 바방 2024.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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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구려의 사회모습


고구려는 압록강 지류인 동가강 유역의 졸본(환인) 지방에서 부여 계열의 주몽이 건국하였다.(B. C. 37) 고구려는 산악 지대에 위치하여 농토가 부족했기 때문에 약탈 경제에 의존하였으며 부경이라는 창고를 두어 약탈물을 보관하였다. 고구려는 건국 초기부터 정복 전쟁을 벌여 평야지대로 진출하였으며 이후 국내성(통구)으로 천도하였다. 고구려는 5부족1) 연맹 왕국으로 구성되었으며 한의 군현을 공략하고 요동으로 진출하였고 그 밖에 옥저를 정복하여 공물을 수취하기도 하였다. 국왕 아래 대가, 상가, 고추가 등의 독립적인 족장(부여의 가(加)에 해당하는 권력자)들이 있었고 그 밑에 사자, 조의, 선인 등의 관리를 두었다. 제가회의(귀족회의)는 고구려 귀족의 대표 회의로 중대한 범죄자는 사형에 처하고 그 가족을 노비로 삼는 등의 중요한 결정을 하였다.

고구려의 풍속으로는 서옥제가 있었는데 혼인을 정한 뒤 신부 집의 뒤꼍에 조그만 집을 짓고 그곳에서 자식을 낳고 장성하면 아내를 데리고 신랑 집으로 돌아가는 제도로 일종의 데릴사위제였다. 또한 조상신을 숭배하여 주몽과 그의 어머니 유화 부인에 대한 제사를 국가적 행사로 지냈다.

제천 행사로는 동맹(10월 추수 감사제의 성격을 띠는 제천 행사)을 치르고 국동대혈(국내성)에서 제사를 치렀다.

2. 확장 개념


1) 부여의 건국 신화


옛날 북이(北夷) 탁리국 왕의 시종 노비가 임신하였으므로 왕이 그녀를 죽이려고 하자, 변명하기를 “크기가 닭알 만한 기운이 하늘에서 나에게 내려왔기 때문에 임신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후에 시종 노비가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것을 돼지 우리에 버렸더니, 돼지가 입김으로 불어서 데워주었기 때문에 죽지 않았다. 또 그것을 마굿간에 넣었더니 말이 또 입김으로 불어서 죽지 않았다.

국왕은 그것이 하늘의 아들인 줄 알고 그 어머니에게 명령하여 기르게 하였다. 그의 이름을 동명이라고 하고, 소와 말을 기르는 일을 맡아보게 하였다. 동명이 활을 잘 쏘므로 왕은 그가 왕위를 빼앗을까 두려워하여 죽이려고 하였다. 동명이 눈치채고 남쪽으로 도망하여 엄호수에 이르러 활로 물을 치니 고기와 자라 등이 떠서 다리를 놓았으므로 동명이 건널 수 있었다. 동명이 건넌 후에 고기와 자라 등이 흩어지니 추격하여 오던 군대들이 건너지 못하였다. 동명이 수도를 정하고 부여왕이 되었다. [〈논형〉, (중국 후한 때 왕충이 지은 책)]

2) 고구려의 건국신화


주몽 신화의 의미 : 주몽 신화는 그 이전에 성립한 고조선의 건국 신화인 단군신화와는 어딘가 다른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천제(天帝)인 환인의 아들 환웅을 아버지로, 웅녀를 어머니로 하여 태어난 단군은 별다른 어려움없이 고조선을 세워 다스렸다. 그런데 주몽은 그에 못지 않은 혈통을 지녔으면서도 나라를 세우기까지 숱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주몽이 부여나 고구려를 세운 시대는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시대와는 다른 분위기임을 짐작할 수 있다. 늦어도 B. C. 5, 4C부터는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 철기문화가 보급되면서 기존의 사회 체제는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이때 한나라의 침입으로 고조선은 멸망하였으며, 그 주변 지역은 한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거나 작은 나라들로 해체되었다. 이 과정에서 부여, 고구려 등 몇몇 세력은 보다 강력한 권력 기구와 지배 체제를 갖춘 새로운 연맹 국가를 세우고자 하였다. 이 새로운 형태의 연맹 국가는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기에 합당한 영웅적 능력을 지닌 왕을 필요로 하였다. 주몽 신화는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응하여 성립한 새로운 유형의 건국 신화, 이른바 영웅 신화이다.

그리하여 주몽은 급격한 사회 변동 속에서 세력의 이합과 집산, 부침과 성쇠가 극심하던 시대의 군왕에게 필요한 위기극복 능력을 갖춘 영웅적 존재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뛰어난 무술과 주술, 지혜를 함께 갖춘 주몽의 위대한 능력은 빛(해모수)과 물(하백)이라는 신성한 혈통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태양과 물은 농사를 짓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두 요소이다. 자연히 농경 문화권에서는 태양신과 수신(水神)을 받들어 섬기게 된다. [한국역사연구회, 「한국고대사산책」]

3) 고구려 사회에 대한 「삼국지 위서 동이전」기록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1,000리에 있다. 남은 조선과 예맥, 동은 옥저, 북은 부여와 접해있으며 환도성 아래에 도읍하고 있다. 사방은 2,000리에 이르고 호수(戶數)는 3만이다. 큰 산과 깊은 골짜기가 많고 평야와 연못이 없다. 사람들은 산골짜기에 살며 산골 물을 마신다. 좋은 농토가 없어 비록 힘써 경작하나 식구들의 식생활에 부족하다. ···

사람들의 성품은 흉악하고 급해서 노략질하기를 좋아했다. 그 나라는 왕이 있고 관직은 상가, 대로, 패자, 고추가, 주부, 우대, 승, 사자, 조의, 선인 등이 있으며 높고 낮음에 각기 등급이 있었다. 동이의 옛말에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하였는데 언어와 제반사가 부여와 같은 점이 많았으나 성품과 기질, 의복은 서로 다름이 있었다. ··· 나라 안의 대가들은 밭을 일구지 않았으며 앉아서 먹는자(좌식자 - 坐食者)가 만여 명이나 되었다. 하호(下戶)들은 멀리서 쌀, 어물, 소금을 공급해 주었다.

백성들은 노래 부르고 춤추기를 좋아하여 촌락에서는 저문 밤에 남녀가 무리로 모여 노래하며 즐겨 놀았다. ··· 감옥이 없었으니 죄인이 있으면 제가가 의논하여 죄인을 죽이고 처자를 몰수하여 노비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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